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토 폰 비스마르크 (문단 편집) == 어록 == > Nicht durch Reden und Majoritätsbeschlüsse werden die großen Fragen der Zeit entschieden, das ist der große Fehler von 1848 und 1849 gewesen, sondern durch Eisen und Blut. >---- >이 시대의 중요한 문제들은 더 이상 언론이나 다수결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며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[[3월 혁명|1848년과 1849년에 일어났던 일련의 사건]]이라고 생각합니다. 즉, 당면한 문제들은 오직 '''[[철혈|철과 피]]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.''' >---- >1862년 9월 29일 제국 의회 총리 취임연설 > "[[군국주의|비록 군비가 우리의 빈약한 몸에 비해서 지나치게 크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에게 유익하다면 우리들은 그것을 몸에 지니는 정열을 지녀야 야 할 것이며, 또한 감히 그와 같이 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. 독일이 착안해야 할 것은 프로이센의 자유주의가 아니라 군비인 것입니다.]] 지금의 대문제는 언론이나 다수결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'''[[철혈|철과 피]](血)''', 곧 병기(兵器)와 병력에 의해서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." >---- > [[http://blog.naver.com/spartacus2/80115617001|연설 전문]] > "모든 군인과 정치가들은 전쟁을 가볍게 여겨서도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." > "어리석은 사람은 경험에서 배우고 지혜로운 사람은 역사에서 배운다." > "작금의 유럽은 화약고이고, 지도자들은 무기고 위에서 담배를 피고 있을 뿐이다. 작은 불씨 하나가 우리 모두를 집어삼킬 전쟁을 일으킬 것이다. 언제 그 폭발이 일어날지는 모르지만, 어디서 일어날지는 말해줄 수 있다. [[사라예보 사건|'''발칸에서 벌어질 저주받을 바보짓''']][* [[발칸반도]]는 당시 안정되어 전성기, [[벨 에포크]]를 보내던 유럽에서 유일하게 분쟁이 잦은 지역이었다]이 그 [[제1차 세계 대전|'''폭발''']]을 일으킬 것이다." > "[[음악]]이란 사랑처럼 무상으로 주어져야 한다." > '''Wir Deutschen fürchten Gott, aber sonst Nichts in der Welt.''' >---- > 우리 독일인은 신을 두려워할 뿐, 세상의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다. >---- > 1888년 2월 6일, [[제국의회]]에서의 연설 중. 매우 호전적인 발언처럼 보이지만, 이는 독일 내부의 [[군국주의]] 여론을 비판하려는 의도였으나 언론까지 다 호전적인 발언으로 받아들이고 인용하는 바람에 비스마르크는 이 발언을 한 걸 후회했다고 한다. > '''Die Gottesfurcht ist es schon, die uns den Frieden lieben und pflegen läßt.''' >---- > 우리가 평화를 사랑하고 가꾸는 것, 그것이 정말 신을 경외하는 것이다. >---- > 위의 연설에 이어서. 연설의 핵심이지만 앞의 자극적인 발언에 묻혔다. > "겸손은 훌륭한 미덕이지만 정치가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."[* [[이홍장]]에게 한 말이라고 한다.] > "황제께서는 매일같이 생일상을 받으려 하신다." >---- > [[빌헬름 2세]]에 대해 탄식하며 > "[[미국]]이 [[영어]]를 사용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."[* 비스마르크는 잔뼈가 굵은 [[외교관]] 출신인만큼 '''[[미국]]의 잠재력'''에 대해서 꿰뜷어본 것으로 보인다.] > "일을 할 때는 절제와 도덕성이 중요하며 특히 먹는 것과 술을 멀리해야 합니다." >---- > 1889년 [[파리(프랑스)|파리]] [[만국 박람회]]에서 녹음. > "법률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[[소시지]]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같아서, 보지 않는 것이 좋다."[* 현대에 와서는 비교적 위생적인 가공 과정과 원료로 만들고, 특히 이 분야의 본진인 독일조차도 소시지를 만들 때는 엄격하게 위생 규정을 지키도록 하기에 큰 염려 없이 먹을 수 있다. 그러나 19세기 후반 ~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소시지 공장과 거기에 쓰이는 고기의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. 자세한 것은 [[소시지]] 항목 참조.] >---- > 비스마르크가 한 말로 알려져 있지만 그가 이 말을 했다는 주장은 1930년대에서야 나오기 시작했다. 이와 비슷한 논지의 말이 실린 최초의 문헌은 1869년 3월 29일자 The Daily Cleveland Herald에 실린, 미국의 시인 겸 변호사인 존 고드프리 색스(John Godfrey Saxe)[* 《장님과 코끼리》이야기의 창작자로 유명한 인물이다.]의 기고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. [[https://en.m.wikiquote.org/wiki/John_Godfrey_Saxe|Wikiquote 링크]] > “외교란 러시아와 싸우지 않는 것이다.” >---- > 비스마르크 시대 독일 외교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 말. 유럽 중부에 위치한 독일의 지정학적 환경에서, 양면 전쟁의 위험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로도 인용된다.[* 따지고 보면 당시 독일과 프랑스의 관계가 워낙 적대적이었던 점을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. 양국은 2차세계대전 이후에도 드골-아데나워 시절의 관계 개선 전까지도 줄곧 경쟁 관계를 유지했다. 물론 그 이후부터 프랑스와 독일은 급격히 친해졌고, 공동 역사 교과서까지 편찬하는데 성공하는 등 사실상 가장 친한 국가가 되었다.] 이를 무시하고 [[빌헬름 2세]]의 [[독일 제국|독일 제2제국]]이 러시아를 적으로 돌리고 [[제1차 세계 대전]]에서 무리한 [[양면전쟁]]을 벌였다가 패망으로 들어선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. > "인생이란 치과의사 앞에 있는 것과 같다. 그 앞에 앉을 때 마다 최악의 통증이 곧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, 그러다 보면 어느새 통증이 끝나 있는 것이다." > '''Mit schlechten Gesetzen und guten Beamten läßt sich immer noch regiren, bei schlechten Beamten aber helfen uns die besten Gesetze nichts.''' >---- > 악법과 훌륭한 관리들을 가지고서는 지속적인 통치가 가능하다. 그러나 최고의 법이 있더라도 무능한 관리가 함께한다면 우리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. >---- > 1850년, 헤르만 바게너[* [[프로이센 왕국]]의 [[보수주의|보수]] 성향 [[정치인]]이자 법률가.]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> '''Die einzig gesunde Grundlage eines großen Staates, und dadurch unterscheidet er sich wesentlich von einem kleinen Staate, ist der staatliche Egoismus und nicht die Romantik.''' >---- > 소국과 본질적으로 구분되는 대국의 건전한 밑바탕은 낭만이 아니라, 국가적인 자부심이다. >---- > 1850년, 의회 연설에서 > '''Es ist soviel Müssen in meinem Leben, daß ich selten zum Wollen komme.''' >---- > 살면서 그토록 많은 해야만 하는 것이 있었지만, 그것들 중 내가 원해서 했던 건 드물었지. >---- > 1865년, 누이에게 보낸 편지에서 > --[[납세의 의무|세금을 내라]], [[병역의 의무|군대를 가라]], [[복종|닥쳐라]]-- >---- > 흔히 비스마르크가 한 말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비스마르크의 정책에 반발한 독일 [[자유주의]]자들이 비꼬면서 한 말이다.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스마르크의 정책을 잘 보여주는 말이라서 꽤 자주 인용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